박주희 Part Ju Hee

산동면의 '늙은 돌' 신앙 - 디지털 세대가 다시 발견하는 애니미즘 문화

1. 수수께끼 같은 돌문화: 마을 입구의 "할아버지 돌"

산동면 초입, 마을 어귀로 들어서면 꼭 인사라도 하라는 듯 허름한 시멘트 도로 옆에 사람 키만 한 돌 하나가 서 있다. 꼭 사람 형체를 닮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연석처럼 아무 의미 없는 바위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고요히 서 있는 그 돌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오래도록 "할아버지 돌"로 불렸다.


할아버지 돌에는 이야기가 있다. 아주 오래전, 산동면으로 이주해 온 한 집안이 들어서자마자 연이어 우환이 생겼고, 누군가 그 자리에 묘를 쓰려다 실패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 아니면 조선시대 어느 고을 수령이 사약을 받고 유배 도중 돌 앞에서 숨을 거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물론 문서로는 남아 있는 게 없지만, 전설은 그런 식으로 사람들의 입과 마음에 오래 남는다.


지금은 그 돌 앞에 작게 제단 비슷한 게 놓여 있고, 명절이면 마을 어르신 몇 분이 몰래 나와 막걸리 한 잔을 붓고 간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공식 의례도 아닌데 그 일은 언제부턴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이 돌은 산동면의 일상이자,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느낌’을 품은 존재다.


이상한 일은 바로 그 돌이 요즘 SNS에서 뜨고 있다는 점이다. 사진을 올리면 "묘하게 끌리는 에너지", "치유받는 기분" 같은 댓글이 달리고, 산동면으로 여행 오는 젊은이들은 그 돌 앞에서 인증샷을 남기는 게 일종의 의식처럼 되어가고 있다. 어떤 유튜버는 그 돌에서 1박을 하며 꿈속에 뭔가를 들었다고 말했고, 몇몇 인스타그램 계정은 그 돌을 배경으로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만들기도 했다.


2. 돌의 역사: 조선시대 장승과 민속 신앙의 흔적

산동면의 할아버지 돌은 단지 신비한 자연물이나 인터넷 밈이 아니다. 민속학적으로 보면, 이 돌은 ‘무형의 신’을 형태로 불러낸 공동체의 오랜 방식과 닿아 있다. 조선시대 마을 입구에는 흔히 장승이나 솟대를 세워 마을을 지키고, 나쁜 기운을 막으려 했다. 이 돌도 어쩌면 그런 기원에서 시작됐을지 모른다.


다만 장승과는 달리, 이 돌은 사람이 깎거나 세운 흔적 없이 그대로 두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즉, 마을 사람들은 이 돌에 의미를 덧씌우고, 그 의미를 세대를 넘어 전했다. 가끔은 돌에 하얀 헝겊이 묶여 있거나, 어린아이의 머리카락이 담긴 작은 병이 놓여 있기도 했다. 아픈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어미의 손길, 길 떠나는 자식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아버지의 염원이 이 돌 앞에서 맺혔다.


이런 방식의 신앙을 **'애니미즘(Animism)'**이라고 부른다. 정신이 사물에 깃든다는 믿음. 무당이나 제사장이 없어도, 사람들이 어떤 대상을 향해 반복적으로 감정을 쏟고 기도하면, 그 물건은 신적인 성질을 띠기 시작한다. 산동면의 할아버지 돌은 그렇게 생긴 신이었고, 지금도 마을의 정신적 경계에 놓여 있다.


3. 디지털 세대와의 충돌, 그리고 조화

의외일지 모르지만, 요즘 이 돌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건 20대 유튜버와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이다. 어떤 젊은이는 이 돌을 본뜬 귀여운 캐릭터를 만들어 굿즈를 만들었고, 스티커나 인형처럼 마을 벚꽃축제에서 판매되기도 했다. 또 다른 팀은 이 돌을 주제로 한 공포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돌 앞에서 속삭이지 마세요.” “비 오는 날엔 절대 만지지 마세요.” 같은 자극적인 멘트와 함께 할아버지 돌은 도시 청년들의 상상력 속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마을 어르신들과의 갈등도 있었다. 어떤 유튜버가 돌 앞에서 분장을 하고 춤을 추는 영상을 올리자, “그 돌은 그냥 찍고 놀라고 있는 게 아니여”라며 마을 회관에 항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유튜버 영상 덕분에 산동면에 처음 오는 외지인들이 늘었다. 마을 이장은 웃으며 말했다. “예전엔 할아버지 돌에 누가 관심이나 있었는가. 요즘은 외지 젊은이들이 거기서 절까지 해.”


이 충돌과 조화는 어쩌면 현대 애니미즘이 가진 복잡한 얼굴을 보여주는 장면일지도 모른다. 이 세대는 과거처럼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이 실린 대상을 나름의 방식으로 소비하고 해석하며 자신들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그러나 그 방식 안에서도 여전히 존중과 연결의 마음이 작게나마 깃들어 있다.


4. 재해석되는 애니미즘: 환경과 신앙 사이에서

할아버지 돌을 둘러싼 이 모든 이야기는 단순한 ‘이상한 관광지’가 아닌, 우리 사회가 신앙과 자연을 다시 바라보는 방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디지털 시대의 젊은 세대는 특정 종교나 교리를 따르기보단, 감각적으로 와닿는 자연 대상에 연결을 느끼고, 그 안에서 마음의 안정을 구한다.


최근 일부 환경운동가들은 이런 애니미즘적 감수성을 활용해 생태신앙 운동을 벌이고 있다. 숲의 정령, 바위의 기운, 바람의 말을 믿던 전통 애니미즘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자연과의 영적 계약'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산동면의 할아버지 돌도 그런 흐름 속에 있다. 디지털 굿즈와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살아난 이 돌은, 어느새 마을 공동체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상기시키는 매개체가 되어가고 있다.


결국, 산동면은 옛것과 새것이 맞물리는 경계지대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그 중심에는 말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지만, 기억과 감정을 받아내는 단단한 돌 하나가 조용히 서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돌 앞에서 오래된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